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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밀쳐져서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이고 OO아...." 아이를 끌어안아 올리고 상대를 바라보니 저 멀리 저벅저벅 균일한 속도로 걸어 가고있었다. 그냥 가려는 사람을 향해 여러번 불렀다.

"저기요."

"저기요."

불러도 답이 없자 화가났다. 지금 뭐하는 거야? 두 살도 안된 이제 막 뛰어다니는 이 작은 아이를 밀어 넘어뜨려놓고 그냥 가는거야? 순간 옆에 나란히 서있었음에도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고. 아이가 사과도 받지 못한상황에서 저 사람을 그냥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일었다. 화를 내야한다.

"야...!"

"야!!!!!!!"

"야 이 새끼야!"

크게 소리를 지르니 그제서야 뒤를 힐끔 바라보고는 가던 길을 갔다. 미안하다는 말은 끝끝내 없었고. 아파트 사잇길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주위를 계속 오가던 사람도 하필 그 때는 없었고. 아이는 내가 내지른 목소리에 놀라 더욱 크게 울었다. 우는 아이를 한 팔로 안아 눈물을 닦아주는데 몸이 벌벌 떨렸다.

 

지금 일어난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있는 우리를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 아이를 밀고 걸어갔다. 아이가 뒤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와 사과도 없이 그냥 힐끗 처다보고는 갈 길을 갔다. 나보다 더 큰 덩치에 스포츠형의 머리 흰색상의와 남색반바지에 운동화.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당시에 나는 CCTV 아래에서 못박힌듯이 서서 그 놈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온몸이 벌벌 떨리고 아이는 몸에 열을 내면서 얼굴이 빨개져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울고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생각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길에서 하염없이 서있을 수도 없었다. 당시에 등지고있던 CCTV 밑의 경비실에도 경비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었다. 누구에게 부탁해서 저 사람 좀 붙잡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해야하지?

 

아 그래 일단 CCTV가 있지. 우선 무슨 일을 하던간에 침착하게 진정을 하자. 우선 집으로 가자. 아이를 대리고 1층의 어린이집을 지나 집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공동출입문에서 20미터도 되지않는. 후문 계단 앞. 하물며 경비실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 번 오르내리던 그 후문 계단 앞 도로. 

 

눈물 자국이 묻은 아이를 간식상앞에 앉혀놓고 심호흡을 했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 사람은 왜 이 어린 아이를 밀고 지나간거야? 그리고 왜 사과를 하지 않지? 일부러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러는거야? 최근들어 묻지마 폭행 등이 뉴스에 많이 뜨고있었던 터라 덜컥 겁이났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그런 사람.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내가 크게 이 새끼야!! 라고 소리를 질러서 앙심을 품고 또 단지에서 마주쳤을 때에 우리를 괴롭히면 어떻게하지? 오만 생각이 한 꺼번에 닥쳐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비실에 사람이 없었으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CCTV 조회를 요청해야겠다. 그런데 일단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는데. 혼자서는 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꾹꾹 눌러두었던 억울함과 분통이 한 꺼번에 터져나와서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내가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자 아이도 따라 울었다. 남편은 아이를 우선 진정시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아이와 나 둘다 눈물자국이 난 채로 관리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작성 한 뒤에  녹화된 CCTV를 보러갔다. 그러나, 씨씨티비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던건지. 프로그램 메뉴를 영 엉뚱하게 누르시고. 종국에는 시스템을 종료하겠습니까? <확인> <취소> 중에 <확인>을 눌러 모니터가 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코미디도 아니고. 한글을 못 읽으시는 분이 경비를 하고 계셨던건가? 모니터가 꺼지자 경비분들은 모니터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서 나중에 CCTV를 볼 수 있게 되면 따로 전화나 인터폰을 주시겠다고했다.

 

경비실에서 계속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이를 대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아이의 식사시간... 아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오픈 카톡방에 이러한 일ㅇ ㅣ있었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할 거 같은데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112에 전화하면 된다고했다.

 

살면서 112에 전화할 일이 몇 이나 있었을까? 112는 아주 긴급한 사안일 때에만 전화화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상황이 종료된 사건도 신고가 가능했다. 전화받은 사람은 육하원칙에 의한 내용과 가해자에 대한 정보와 피해자의 주거지주소를 묻고는 곧 경찰관들이 방문할 거라했다. 

 

확실히 시간이 되자 경찰관들이 방문했다. 밥을 먹고 있던 아기는 어리둥절하고 어두운 색의 제복을 입은 키가 큰 낯 선 남성이 둘이나 집안에 들어오자 어안이 벙벙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찰관은 상황을 묻고 가해자에대한 처벌을 원하는지 물었다. 진술서를 작성해야한다하여 진술서를 수기로 작성하여 경찰관께 직접 제출했다. 경찰관은 사건접수 후에 형사가 배정되어 수사가 진행될거라고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처벌까지 이뤄질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에대한 신원 파악은 가능할거라고.

그리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CCTV는 계속 확인을 하지 못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 깨기를 여러번. 눈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밀쳐 떠밀려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아이의 장면이 수십면 재생되었다. 아이를 눈에 담고있어도 엉덩방아를 찧고 우는 아이가 계속 보였다. 그때 내가 좀 더 아이를 멀찍이 데리고 있어야했었을까? 아니면 안아달라고 했었는 아이를 안아줄 걸 그랬을까? 아니면 아예 산책을 나가지 말았어야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일었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던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PT장에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사건이 있었던 곳의 CCTV가 달린 경비실 앞을 지나는데 경비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안에 들어가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CCTV화면에 띄워져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학교 체육복이었다.

 

당시에 덩치가 컸었기에 나는 성인인줄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입는 체육복. 경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06동에 사는 남자아이인데. 평소에는 엄마랑 같이 다니는데 이 날은 혼자서 집으로 하교를 했는가 보다고. 지체인지 자폐인지 하여간 장애가 있는 남자 아이라고 한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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