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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6일차. 산후 우울증이 올뻔 했지만 남편에게 성질부리고 엄마와의 기나긴 통화로 기분이 많이 개선되었다.

 

분명 산후조리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출산을 하기 전까지만해도 아기를 낳고 나면 되는대로. 상황에 맞춰서. 모유수유든 분유수유든 뭐든간에 되는대로 하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입원한지 사흘차때부터 가슴이 불어오르더니 6일차되는 퇴원일에는 가슴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살짝만 건드려도 너무너무 아팠다.

 

퇴원일에 바로 조리원에 입소하여 바로 유축을 했는데 60ml가 나왔다. 그걸 신생아실에 전해주는 과정에 원장님이 보시고는 바로 마사지실로 이동.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나의 가슴을 마사지해주셨다. 왼쪽가슴은 원장님이 오른쪽 가슴은 실장님이 맡았다. 거의 한시간동안 주물러지고 짜내어진 나의 가슴은 붉게 달아올라서 냉찜질을 해야했는데. 가슴마사지를 받는 내내 젖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임신을 알게된 5주차때부터 가슴이 부어올라서 횡단보도 초록불을 앞두고도 뛸 수가 없었기 떄문이다. 자다가도 가슴이 아파서 깨기도 여러번이었으니.... 모유량이 많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조리원에 들어와서 6번의 가슴마사지를 받았는데. 받을 때마다 원장님과 실장님이 모유가 많다고 감탄을 매번 하시니...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지금 조리원에 입소해있는 대부분의 산모가 모유량이 많고 모유수유에 욕심이 많다고.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는 분유를 먹이려는 산모는 없다. 애초에 이 조리원이 모유수유를 권장하기로 소문이 나있기도 해서일까. 원장님께 직접 물어보니 분유를 먹이려는 산모는 아주 가끔 있다고하고. 회사 복직문제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복직하기전에 출산휴가 중에라도 모유를 먹이려는 산모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다들 모유수유에 열성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새벽에 수유콜을 받는 사람은 없지만, 새벽에 모유를 유축하여 신생아실에 전달하는 산모는 나 뿐만이 아니고 다른 산모들도 많다고 한다. 수유콜은 대체로 7시부터 대부분은 받기 시작하여 수유실에 앉아있노라면 익숙한 얼굴의 산모들이 삼삼오오 모이는데. 최대 5명이 앉아서 수유를 할 수있는 공간이 꽉차서 객실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도 있다. 다들 본인의 아기에게 집중을 하여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젖을 먹인다.

 

가슴을 잘 드러낼 수있도록 가운데에 깊게 파인 절개선을 따라 단추가 달린 산모복은 분홍색인데. 오래된 산모복은 연한 분홍색이고 그나마 새 것으로 보이는 산모복은 조금 더 진한 분홍색이다. 분홍색의 펑퍼짐한 옷을 뒤집어 쓴 산모들이 모여서 붉은 빛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수유를 하고있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모유수유를 향한 열망이 없었던 산모도 여지없이 그들에게 동화되어버리고 만다. 나 또한 그랬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나서 젖병에 노출횟수가 적은 아기는 엄마의 젖을 아주 잘 빨아 먹는다. 제왕절개를 한 나는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려본게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미 젖병에 잔뜩 노출된 아기는 나의 젖꼭지를 거부하고 울고 새빨개져서 이도 나지않은 잇몸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응애 응애하고 서럽게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너무 너무 속상하다. 옆의 산모의 아기는 평온하게 엄마의 젖을 실컷 빨고 순하게 잠드는데. 나의 아기는 젖을 제대로 물지 못해서 뉘이면 울고 뉘이면 울고 또 뉘이면 울어버리니 아기가 배가 고플까봐 마음은 애가 타고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하니 결국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만다.

 

결국에는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는데. 아기를 돌보는일이 서툰 내가 어찌나 못나보이던지. 속상하고 아기에게 미안한지.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살짝씩 찬다. 정말 슬펐거든. 이 모습을 신생아실 직원분께서 보게되어서 특별관리 대상이 된 거같은데.... 뭐 덕분에 좀 더 섬세한 케어를 받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되었다. 

 

눈물을 흘리던 날 내 탓을 하기 싫어서 남의 탓을 많이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에게. 남편이 조리원에서 조심한다고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보이지도 않고. 물 한모금 마시지도 않으니 겸상을 하지도 못하고. 주말에 곁에서 체온을 느끼면서 잠도 자지 않으니 서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차가 뭐가 중요하고 코스트코에서 딸기를 사다주는 거보다 조금이라도 곁에서 있으면서 날 도닥거려주길 바랬는데. 그런데에는 영 잼병인 사람이었던지라 결국 도닥거려달라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나니 옆에서 날 토닥거려줬다. 그 전까지는 맞은 편에 앉아서 별 것도 아닌걸로 운다고 하는데 그 말이 더 속상했다. 물론 심각하게 생각할 수록 점점 심각해질 뿐이기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는게 마음이 편하기야 했겠지만. 그럴 수 있었더라면 내가 눈물 지을 일도 없었겠지.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서 조리원 객실에 앉아있노라니 너무 조용하고 쓸쓸했다. 남편에게 아기를 오래 보여주고 싶어서 이날은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모자동실을 했기에 몸도 지쳤고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도 좋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거의 한 시간 반 가량을 위로와 격려 그리고 별 시답지않은 시시콜콜한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실컷 떠들고 나니 기분이 한 결 개운해졌다. 그리고 한시간 남짓 쉬고나니 다시 돌아온 유축의 시간. 또 젖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지나치게 조용한 조리원이 적적하여 무의미하게 떠드는 유투버의 말소리가 들리게 핸드폰으로 틀어놓고. 그거로도 부족해서 유투브에서 또 음악을 찾아서 틀어두었다. 그리고 가슴을 내어놓고 유축기로 가슴에 고인 모유를 짜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한 번 더 유축. 그리고 7시에 수유콜. 그리고 8시에 수유콜 그리소 11시까지 모자동실... 그리고는 몸 관리를 위한 전신 마시지를 받고, 점심을 먹고 또다시 유축을 한다. 그리고는 모유가 나오는 가슴 관리를 위한 가슴마사지를 1시부터 2시까지 받고. 3시까지 쉬는 시간을 갖은 뒤에 여지없이 울리는 수유콜을 따라 수유실로 이동한다.

 

아기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잔뜩 성이 나서 울어버리면 젖을 먹이는데 애를 먹기 때문에. 수유콜을 받으면 허둥지둥 거리면서 양말을 꿰어신고 산모복 위에 병원의 로고가 세겨진 체크무늬 가운을 걸치고 허겁지겁 수유실로 뛰듯이 내려간다. 도착한 수유실에서는 여지없이 늘 비슷한 모습의 산모들이 가슴을 내어놓고 자기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잔뜩 화가나서 우는 아이. 젖을 먹다가 지쳐서 잠든 아기를 애써 깨우려는 엄마들의 목소리.

 

가슴에 젖이 차면 단단해지고 아프기 때문에 3시간마다 유축기로 젖을 짜내고. 그러고도 남는 젖이 많기 때문에 수유콜이 울리면 서둘러 내려가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직은 아기가 젖을 빠는데 익숙하지 않고 빠는 힘도 약하기 때문에 사실상 젖을 먹인다기보다는 젖먹이는 연습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다.

 

나의 가슴은 지나치게 젖이 많고 유축기로는 전유만 뽑아낼 수있고 후유는 뽑아낼 수가 없는데. 이 후유가 계속 고이고 고이다 보면 젖몸살 유선염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후유는 아기만이 해결해 줄 수있다. 이외에 가슴마사지로 젖을 다 비워낼 수도 있지만... 조리원을 퇴소하고 나서 매번 가슴마사지(오케타니, 통곡)을 불러다가 마사지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원하는때에 마사지사가 없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병원에서 아기가 젖꼭지도 제대로 물지 못하던 때에 한시간 두시간 지날 때마다 점점 단단해지는 가슴을 만지면서 너무나 무서웠다. 갈 수록 가슴은 단단해지고 팽팽하게 불어나서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데. 남편에게 출산전부터 가슴마사지를 부탁했었는데. 제대로 공부를 안해놓아서 전혀 도움이 안되서 또 화가 났었다. 내가 내 가슴을 마사지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조리원에 오기전 이틀동안 젖몸살이 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게되었고. 결국 도착한 날에 잔뜩 붉어진 가슴은 냉찜질행이었다.

 

나의 가슴상태 개선에 남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곁에서 제일 많이 고생을 했다. 제왕절개는 입원이 5박 6일간이었는데. 유도분만일을 포함하면 총 6박을 병원에서 보내야했다. 나는 그나마 병실침대였지만 남편은 소파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나름 환자라고 보호자역할을 한다며 병원에서 6박을 단단한 소파에서 담요한장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수술을 한 나의 바이탈을 확인하기 위해 1시간 단위로 들어오는 간호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거의 잠을 자지 못했기도 했고. 보호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했기 때문에 자다가도 마스크를 주워서 쓰기 바빴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날위해 물수발들어줘 심부름해줘 머리도 감겨줘 발도 씻겨주고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덕분에 무사히 병실 생활을 할 수있었기에 우수보호자포상금을 내렸으나 결국은 병원비로 쓰였다.

 

그런데 예전에는 남편이 이 블로그를 그나마 좀 읽은 줄 알아서 좋은 말 위주로 적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이 블로그를 제대로 읽지 않는 다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에 그냥 막 내용을 쓰기로했다. 내 블로그를 읽었으면 맘모스빵을 구해다가 사식으로 넣어줬을 건데. 맘모스 빵 구경은 아직도 못해봤다.

 

하여간. 조리원에 입소하고나서 모유수유, 유축, 가슴마사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허둥지둥 하다보니 나만의 시간과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특별관리대상이 된 덕분인지..ㅋ.. 이렇게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가슴속에 가지고있던 말들을 옮겨 적어놓으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이 또한 다 추억이 되겠지..... 

 

외롭고 쓸쓸한 것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서였겠지.

임신전부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한지 오래되었고.

임신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였고.

출산후에도 코라나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아기를 길러갈 미래에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만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하겠지.

 

너무 애쓰려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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