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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본부장이 공개적스케쥴일 때 여러번 대표이사실에 드나들더니 육아기 단축근무가 승인되었다.

육아기 단축근무를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바꾸겠다고. 보고한 갱신일의 바로 전날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초기에 기안하였던 기안문은 회수요청이 들어왔고.

내가 직접작성하지 않고. 우리 팀장이 나의 육아기 단축근무 신청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사전에 나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남아있는 잔여 기간을 모두 한꺼번에 신청하여 올렸다.

나는 기안이 승인이 난 뒤에서야 문서상의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나의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하는데. 정작 당사자가 문서를 작성하지 않도록 배제된다는 사실이 이해다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는 코어시간(10-4)을 지키지 않는. 육아기 단축근무(8-3)을 승인 받았다. 우리 회사에서 두번째로 적용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장장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나는 중간관리자급 두 명의 퇴사, 그리고 이제 막 일여년을 근무한 직원의 퇴사. 또 팀장과 팀원간의 갈등 사이. 그리고 줄어든 근무시간 대비 앞선 이유로 늘어난 업무량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존에 8-3을 하고있는 사람의 단축근무를 회수한다거나, 회사의 코어시간 준수가 우선되어야한다는 둥.... 몸무게는 하루에도 2~3kg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거니와.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이명, 그리고 온몸에 올라오는 만성 두드러기가 더욱 심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두드러기 약을 챙겨먹으면서 새카만 하늘을 보며 새벽출근을 해서는 막막한 마음에 모니터를 보고 한숨을 여러번 쉬었다.

 

왜 마땅히 내가 누려야하는 권리를 이행하는데 그들의 승인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노무사의 의견까지 들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표이사를 설득을 해야하는 걸까?

 

8-3제도를 쟁취해내었다는 성취감 이면에는 해결되지 못한 찝찝함이 아직 남아있다. 왜냐하면 나 이후로 나와같이 8-3근무를 희망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려는 동료들이 아직 여럿 남아있음을 알고있었고. 또, 그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서 8-3제도를 획득해낼 수 있으리라는 장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8-3근무를 획득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복직한 이후로 중간관리자가 퇴사하여 실질적인 주요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부재했던 게 컸다. 내가 우리팀에서 주요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신입직원 수준의 업무수행능력을 갖췄었다면 말도 못꺼내고 부장 또는 본부장선에서 기안문 조차 올릴 수 없게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아쉬웠기에 그들이 회사에서 내가 근무하는 요구조건을 맞춰준 거였겠지.... 또, 보통은 구두로 안된다고 통보를 받으면 거기서 멈췄겠지만.

 

나는 문서를 기안해서까지 정면돌파를 선택했기도 한 거같다. 아무래도 문서화를 하면 기록으로 남게되고. 어떻게든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노동부까지 신고를 할 수 있는 사유이기 때문에. 그들을 움직이는 하나의 방법이었기도하다. 문서를 기안하지 않았으면 그들도 움직이지 않았겠지.

 

그래서 나의 기나긴 육아기단축근무를 획득하기 위한 여정과 이제 단축근무 기간을 모두 소진하여. 사측과의 불협화음을 더이상 일으킬 일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유연근무제도를 이용하여 7시 출근하여 4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야겠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더라.

7시까지 회사에 출근해야한다더니. 혹시 하는 업무가 미화였냐고.

우스개소리지만. 정작 7시에 출근해서 미화과장님들은 출근도 안하신 상태인 걸 그들도 모르겠지.

 

 

이제 곧 복직할 동료에게 위와같은 사건의 과정들을 모두 공유하고 또 최근의 추이도 공유하였다.

 

앞서 8-3 근무를 가장 먼저 하셨던 과장님께서 둘째를 임신하시어. 임신기 육아기 단축을 과거에 했던 바와 같이 8-3으로 하셨는데. 이제 그렇게는 해주지 못하겠다고. 9-4로 사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대로 수용하셨다고.

아무래도 임신중이신지라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함이 큰 듯 하였다. 그럼에도 9시에 출근하여 4시에 퇴근하는 것은 본인의 육아와 출근 퇴근시의 스트레스 감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 다른 복직자는 8-3으로 육아기단축근무를 하고 싶었으나, 본인 위에 있는 부장 선에서 사용을 허락받지 못하였다고한다. 이렇게 뒷소문이 돌고야 마는 것은 본인 위에 있는 부장이 결혼도 아이도 없는 미혼이라는 점에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는 말과 같이 애도 안낳아본 사람이 육아정책을 어떻게 짠다는 것이며. 아이도 안낳아본 사람이 육아에 대하여 얼마나 알겠느냐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동료는 크게 낙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본인이 있는 부서의 장은 그렇게 평소 협조적이셨으니 본인의 육아기 단축근무 쟁취에 대하여 크게 관심갖고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노조로 바로 가서 대응방안을 알아볼 수는 없지 않을까하며 여러 고민을 하였다. 복직 전부터 회사의 여러모의 이야기를 들으니 또 걱정이 많아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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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경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제야 일반적이지 않던.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서 아이를 밀어 넘어뜨리고. 밀어 넘어져 울고있는 아이에게 사과하지 않고. 뛰어서 도망치지도 않고 평소보복 그대로 유유히 사라지던 모습 말이다.

 

지체가 있거나 자폐가 있거나. 사회화가 되지 않음이 분명했다.

 

그 순간 이 사건을 알게되었을 가해재의 부모가 생각되었다.

 

"그러면 상대 부모가 모르게 경찰신고를 취소를 해야겠네요. 그 부모가 알게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 말을 남기고는 곧 있을 수업을 들으러 이동했다. 아직 형사님께서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진해이 좀 더딜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을 받고 나서 유산소운동을 하던 중 경비대장님께 연락이 와서 형사들이 와서 CCTV화면 확인 후 복사본을 가지고 가셨다고. 본인들이 확인을 해보니 106동에 사는 남자아이인데 장애가 있다고. 아침에 경비실앞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한 번더 유선으로 들었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남은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샌드위치를 사고. 경비실과 관리사무소에 보낼 파운드케이크를 바리바리 사서 후문계단을 막 올라왔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건담당 형사였다.

 

형사께서는 상대부모에게 연락을 취하여 내일 서에와서 CCTV화면을 확인하라고 했다고한다. 상대부모에게 본인 휴대폰  연락처를 넘겨줄테니 상대부모와 잘 이야기하고 나서 전화를 달라고하였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관리사무소에 파운드케잌들을 전달하고나서 남편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 

 

우리 아이는 사건 당시에 넘어져 크게 운 것 외에는 큰 외상이 없었다. 오히려 부모인 나의 마음이 계속 괴로웠을 뿐. 한 번의 사고가 있었던 나도 이렇게 오래간 마음이 아픈데. 상대 가해자의 부모는 어떠했을 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오늘과 같은 일이 한 번 뿐이었을까? 분명 평소 다녀야만 하는 길에 대한 강박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목에 하필 우리가 서있었을 뿐이고. 

 

다음날 아침 9시가 얼마 넘지도 않아서 상대부모라는 여자분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아파트 후문계단을 올라가는 중인데. 집주소를 알려주면 만나뵙고 싶다고. 집 주소를 알려주자 얼마 지나지않아 식은땀을 잔뜩 흘리는 중년의 여성분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을 벌벌떨고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시면서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서는 얼굴을 마주보자마자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계속 말씀을 하시고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셨다. 

 

진정이 되지 않으시는 거 같아 에어콘 온도를 낮추고 선풍기 바람을 옮겨주며 손을 가만히 잡자 손으로 온몸을 사시나무떨듯이 떠는게 느껴졌다. 얼마나 긴장하시고 걱정하고 슬프실까. 우리집에 오는데 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남처럼 느껴지지 않아 품으로 안아드렸다. 나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키에 몸이 벌벌 떨리는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몇 번을 이야기하고 등을 쓸어드리니 수 분뒤에 몸의 떨림이 잦아지는게 느껴졌다.

 

상대부모에게 들으니 이러했다.

아이는 지체 장애가 있다고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기는 하나,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지능밖에 없다고했고. 사람이 양쪽에 서있으면 그 사이를 조심히 피해서 지나가야하는데. 피해갈 줄을 모른다고. 옆으로 몸을 돌려서 지나가거나 해야하는데 그럴 줄을 모른다고했다. 그 날도 아마 그런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평소에는 본인이 아이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데 작녀는 코로나로인해 재택교육이어 등하교를 할 일이 없었고. 이제 하반기가되어 개학하여 혼자 등하교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고한다. 그리고 혼자 등하원한지 이틀만에 우리 아이와 부딪힌일이 발생한거라고. 

 

아이의 엄마는 식은땀을 연신흘리고 아이의 상황과 미안함과 교육을 앞으로 잘 시키겠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를 바라보며 마음 한 켠이 홀가분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내가 일찍 경찰신고를 취소했으면 저 엄마는 오늘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경찰에게 전화가 걸려와 당신의 아이가 사고를 쳤으니 경찰서에 찾아와 CCTV를 보고 상대부모와 합의를 보라! 이런 이야기 말이다.

 

이러한 일이 거의 일주일에 가까이 이러한 일을 흘러보내니 이 가해자의 엄마를 만날때에는 나의 마음이 매우 평온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가해 부모를 보듬어 줄 수있었겠지.

 

그 엄마에게 오늘의 만남이 상처로 남지 않았으면 했다.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하고 기억은 계속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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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밀쳐져서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이고 OO아...." 아이를 끌어안아 올리고 상대를 바라보니 저 멀리 저벅저벅 균일한 속도로 걸어 가고있었다. 그냥 가려는 사람을 향해 여러번 불렀다.

"저기요."

"저기요."

불러도 답이 없자 화가났다. 지금 뭐하는 거야? 두 살도 안된 이제 막 뛰어다니는 이 작은 아이를 밀어 넘어뜨려놓고 그냥 가는거야? 순간 옆에 나란히 서있었음에도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고. 아이가 사과도 받지 못한상황에서 저 사람을 그냥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일었다. 화를 내야한다.

"야...!"

"야!!!!!!!"

"야 이 새끼야!"

크게 소리를 지르니 그제서야 뒤를 힐끔 바라보고는 가던 길을 갔다. 미안하다는 말은 끝끝내 없었고. 아파트 사잇길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주위를 계속 오가던 사람도 하필 그 때는 없었고. 아이는 내가 내지른 목소리에 놀라 더욱 크게 울었다. 우는 아이를 한 팔로 안아 눈물을 닦아주는데 몸이 벌벌 떨렸다.

 

지금 일어난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있는 우리를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 아이를 밀고 걸어갔다. 아이가 뒤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와 사과도 없이 그냥 힐끗 처다보고는 갈 길을 갔다. 나보다 더 큰 덩치에 스포츠형의 머리 흰색상의와 남색반바지에 운동화.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당시에 나는 CCTV 아래에서 못박힌듯이 서서 그 놈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온몸이 벌벌 떨리고 아이는 몸에 열을 내면서 얼굴이 빨개져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울고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생각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길에서 하염없이 서있을 수도 없었다. 당시에 등지고있던 CCTV 밑의 경비실에도 경비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었다. 누구에게 부탁해서 저 사람 좀 붙잡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해야하지?

 

아 그래 일단 CCTV가 있지. 우선 무슨 일을 하던간에 침착하게 진정을 하자. 우선 집으로 가자. 아이를 대리고 1층의 어린이집을 지나 집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공동출입문에서 20미터도 되지않는. 후문 계단 앞. 하물며 경비실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 번 오르내리던 그 후문 계단 앞 도로. 

 

눈물 자국이 묻은 아이를 간식상앞에 앉혀놓고 심호흡을 했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 사람은 왜 이 어린 아이를 밀고 지나간거야? 그리고 왜 사과를 하지 않지? 일부러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러는거야? 최근들어 묻지마 폭행 등이 뉴스에 많이 뜨고있었던 터라 덜컥 겁이났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그런 사람.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내가 크게 이 새끼야!! 라고 소리를 질러서 앙심을 품고 또 단지에서 마주쳤을 때에 우리를 괴롭히면 어떻게하지? 오만 생각이 한 꺼번에 닥쳐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비실에 사람이 없었으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CCTV 조회를 요청해야겠다. 그런데 일단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는데. 혼자서는 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꾹꾹 눌러두었던 억울함과 분통이 한 꺼번에 터져나와서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내가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자 아이도 따라 울었다. 남편은 아이를 우선 진정시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아이와 나 둘다 눈물자국이 난 채로 관리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작성 한 뒤에  녹화된 CCTV를 보러갔다. 그러나, 씨씨티비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던건지. 프로그램 메뉴를 영 엉뚱하게 누르시고. 종국에는 시스템을 종료하겠습니까? <확인> <취소> 중에 <확인>을 눌러 모니터가 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코미디도 아니고. 한글을 못 읽으시는 분이 경비를 하고 계셨던건가? 모니터가 꺼지자 경비분들은 모니터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서 나중에 CCTV를 볼 수 있게 되면 따로 전화나 인터폰을 주시겠다고했다.

 

경비실에서 계속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이를 대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아이의 식사시간... 아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오픈 카톡방에 이러한 일ㅇ ㅣ있었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할 거 같은데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112에 전화하면 된다고했다.

 

살면서 112에 전화할 일이 몇 이나 있었을까? 112는 아주 긴급한 사안일 때에만 전화화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상황이 종료된 사건도 신고가 가능했다. 전화받은 사람은 육하원칙에 의한 내용과 가해자에 대한 정보와 피해자의 주거지주소를 묻고는 곧 경찰관들이 방문할 거라했다. 

 

확실히 시간이 되자 경찰관들이 방문했다. 밥을 먹고 있던 아기는 어리둥절하고 어두운 색의 제복을 입은 키가 큰 낯 선 남성이 둘이나 집안에 들어오자 어안이 벙벙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찰관은 상황을 묻고 가해자에대한 처벌을 원하는지 물었다. 진술서를 작성해야한다하여 진술서를 수기로 작성하여 경찰관께 직접 제출했다. 경찰관은 사건접수 후에 형사가 배정되어 수사가 진행될거라고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처벌까지 이뤄질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에대한 신원 파악은 가능할거라고.

그리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CCTV는 계속 확인을 하지 못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 깨기를 여러번. 눈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밀쳐 떠밀려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아이의 장면이 수십면 재생되었다. 아이를 눈에 담고있어도 엉덩방아를 찧고 우는 아이가 계속 보였다. 그때 내가 좀 더 아이를 멀찍이 데리고 있어야했었을까? 아니면 안아달라고 했었는 아이를 안아줄 걸 그랬을까? 아니면 아예 산책을 나가지 말았어야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일었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던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PT장에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사건이 있었던 곳의 CCTV가 달린 경비실 앞을 지나는데 경비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안에 들어가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CCTV화면에 띄워져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학교 체육복이었다.

 

당시에 덩치가 컸었기에 나는 성인인줄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입는 체육복. 경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06동에 사는 남자아이인데. 평소에는 엄마랑 같이 다니는데 이 날은 혼자서 집으로 하교를 했는가 보다고. 지체인지 자폐인지 하여간 장애가 있는 남자 아이라고 한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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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가 늘 비슷하다보니. 정신을 차려보면 일요일이고 또 정신을 차려보면 일요일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시간에 쫓기듯이 육아를 하다보면 매일이 비슷한 느낌이어서 정신적으로 탈력감을 느낀다. 

 

짬짬이 쉬는시간에 무언가라도 해보려고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맘 카페를 보거나, 육아관련 카톡방에서 수다 떨기 밖에 없다. 맘카페나 맘톡에서 얻은 정보로 육아물품을 구매하거나 최근의 고민거리를 나누며 '우리 아기도 혹시?' 하는 걱정거리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거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이 걸리지 않았을까?

지금도 주말에 채운 에너지가 목요일즈음되면 고갈되어서 아기랑 함께 있을 때 한 마디도 안하는 시간이 종종 발생한다. 아이에게 쉼없이 조잘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의성어와 의태어로 반응을 해주지만....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이다보니 가금씩은 지쳐버리곤한다.

 

그럴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지겹고 지루한 시간이지만... 아이와의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러면 소진되었던 에너지가 살짝 차오르면서 남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나의 마음이 슬프건 어쩌건간에 아기는 사랑스럽다. 매일매일 늘어나는 너의 무게와 재롱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져간다. 하룻밤을 자고나면 너가 얼마나 자랐을까 기대되며 설레이기도하다.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한없이 외롭기도한게 바로 육아의 면면인가보다. 나를 보고 웃고 까르륵 웃을때는 세상이 환하게 밝혀지다가도 나를 보고 인상을 쓰고 울어대면 어찌할줄 몰라 쩔쩔거리며 좌절하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게되어서 하루에 웃는 일이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가슴가득하게 충만해지는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육아의 고된 노동은 이를 알기위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작디 작았던 너의 손가락에 살이 점점 붙고있다. 나의 엄지손가락을 겨우 붙잡았었는데 이제는 꽤 커져서 손을 맞잡는 재미가 생겼다. 셀로판지 같던 손톱도 제법 두꺼워져서 자르는 재미가 생겼다. 등살도 제법 붙어서 가슴을 맞닿아 안고있으면 두둑하게 만져지는 피둥피둥한 등살이 사랑스럽다.

두 세달 뒤면 벌써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되어서 엄마 아빠가 일반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간식거리가 있으면 아기의 앞에서 먹는 모습을 부러 보여주기도하고, 과일 등은 향기를 맡게 해주고도 있다. 아직은 별 반응이 없지만 이러한 일상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되겠지.

육아오픈카톡방에서는 대부분의 아기들의 뒤집기를 한다고한다. 게 중에서 가장 우량!하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우리 아기는 아직 뒤집으실 생각이 없으시다. 본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기들이 발달이 늦다고는 하는데. 한 번 발달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일거같아서. 한편으로는 천천히 뒤집어주길 바라며 한 편으로는 우리 아기만 늦되어서 걱정이 되기도한다. 

 

늘 느끼지만 지금만큼 작고 귀여운상태로 오래 머물러줬으면 하면서 반대로는 어서 자라서 더 많은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된다.

동전습진의 흔적

너를 계속 괴롭히는 동전습진. 50일경 산후도우미가 끝날무렵 우리 아기의 배 전체에 땀띠가 났다. 땀띠는 시원하게&보습이 중요하다고했다. 또한 땀이 모공을 막지 않도록 잘 씻겨야한다고했다. 매일 씻기고 수딩젤을 바르고 로션을 발랐는데 땀띠가 좀 잡히는가 싶었더니 몸의 앞면에 얼룩덜룩하게 반흔이 올라왔다.

 

이게 뭘까?

 

하룻밤 가슴팍에 올려서 재워서 더워서 태열이 올라온걸까? 하기에는 쉽게 열이 잡히지 않았다. 그 날로부터 거의 5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홍조가 잡히기 시작했다. 병명은 '동전습진'  어른들이 걸리는 습진과 다르게. 아기들이 걸리는 습진은 건조하고 약한 피부장벽에 곰팡이균이 침투해서 생긴다고 한다. 한마디로 건조해서 생긴다.

 

땀을 제대로 씻겨야 한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바쓰를 사용한게 아무래도 독이 된 듯 했다. 그 유명한 쁘리마쥬 바쓰앤샴푸를 사용하고있었는데. 유기농제품이라서 거품이 잘 안난다더니. 그래서 잘 씻기는지 알 길이 없어 여러번 펌핑해서 사용했더니 피부를 더 건조하게 만들었던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있다.

 

이틀에 한 번 바쓰를 사용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지난 삼주가량은 바쓰앤샴푸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로만 샤워를 시키고 일요일에만 특별히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기저귀를 갈아줄때마다 전신에 로션을 발라주고 또 발라주었다.

세럼-로션-크림-아쿠아퍼(바세린)을 켜켜이 쌓아올리니 목욕을 하고난 아이의 온몸이 축축하고 번들거렸다.

 

그런데 땀띠와 동전습진으로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아기의 피부여서... 건조한 피부에 로션을 바르면 얼마나 따가운지 겪어본 사람을 알 거다. 로션을 바를떄마다 몸을 비틀면서 짜증섞인 울음을 내뱉었다. 어린 몸으로 매번 따가움을 견뎌내야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니 그저 로션이 끈적거려서 그러겠거니.. 했다가 시간이 지나서 새살이 돋아오르며 각질이 벗겨지는 범위를 보고서는 아... 우리 아기가 로션이 많이 따가웠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군데만 새살이 돋은게 아니었다. 정말 광범위했다... 내 몸에 저렇게 많은 부위가 건조해서 각질이 벗겨질 정도라면 정말 얼마나 따가웠을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엊그제(금) 별안간 병원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병원에 후다닥 다녀왔다. 아기 사경관련되어서도 진찰을 받고 동전습진도 함께 진찰을 받았다. 다른곳을 괜찮으나 팔 접히는 안쪽과 허벅지 쪽은 심해서 약을 좀 발라야한다고 했다. 확실이 팔안쪽과 허벅지 안쪽이 가장 빨갛고 로션을 아무리 발라고 크게 차도가 있지 않았다.

 

락티케어를 처방받아서 아침 저녁으로 1회씩 1일 2회 발라준지 금(1회), 토(2회), 일(2회)인 지금 정말 눈에 뜨이게 나았다. 진작에 병원에 가서 처방받았으면 아기가 이렇게 오랜기간 힘들어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과 아무리그래도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로션인되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또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새살이 돋아나서 더이상 로션을 바를때 화내지 않고 평안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있으면 병원에 다녀오길 참 잘헀다는 생각한다. 

 

동전습진은 보습이 답이라는데. 락티케어를 아무리 발라도 보습을 하지 않으면 도루묵임으로. 지금처럼 꾸준히 보습을 해줘야겠다. 동전습진을 다룬 블로그들을 보면 동전습진을 어떻게 보습해야하는지 나와있지 않았다. 어떤사람은 발라준 로션을 다 닦아주고 다시 로션을 발라줬다는 사람도 있다.(이러면 절대 안된다.)

 

땀띠이든 태열이든 동전습진이든 해줘야하는 보습은

기저귀를 갈 때마다 로션을 덧발라준다고 생각하면되겠다.

나는 고보습 로션을 여러게 사서 심한부위에 집중적으로 더 발라줬는데.

굳이 여러가지 성분이 섞이게 다양한 로션 크림 등을 사용하기보다는.

한가지의 순한 크림을 수시로! 일주일에 한 통을 다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기저귀를 갈아 줄 때마다 덕지덕지 발라주는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자는 아기의 몸에도 슬쩍슬쩍 발라주었다.

며칠 락티케얼를 발랐다고 하얗고 깨끗해진 피부를 보니 근심걱정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큰병원에가서 사경관련 진단만 받으면 정말 마음 놓고 아기를 기를 수 있겠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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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기를 수록 아기와 나의 관계에서 새롭게 알고 느끼게되는 경이로운 감정들에 놀라는 때가 많다.

어떻게 이 아기라는 존재는 한톨의 의심조차 없이 나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걸까? 의심과 걱정없이 나를 보고 방긋 방긋 웃는 얼굴과 따뜻하고 작은 고개를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새근새근 숨을 쉬면 가슴이 벅차기까지 한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존재가 나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 있겠는가.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았기에 이런 감정을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었다. 아기를 기르며 이 작디 작은 존재가 생명을 모두 나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칠 때마다 몸서리처질 정도로 끔찍하게 행복한 순간이 찰나에 지나간다.

아기를 갖기전에 언젠가 대형마트에 쇼필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그곳에서 계산을 위해 줄을 서 있는 와중에 앞에선 모자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허리까지 오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서는 나도 저렇게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남편과 아기를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후 실제로 남편과 아기를 낳게된 이후로는 매일매일이 버겁고 또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 자그마한 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아기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통을 하는 순간에 뱃속에서 많이 힘들었을까? 신생아때에 젖을 제대로 물지 못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배가고프지는 않았을까? 어젯밤에 잘때에 추웠을까? 피부가 건조해져서 가렵거나 따갑지는 않았을지. 코가 막혀서 밥을 먹는게 힘들지는 않을지. 잠을 자고싶었는데 엄마랑 놀자고하느라고 제때 잠을 못자서 피곤하지는 않을지. 새벽에 일어나서 엄마가 깨어나는걸 기다리고 있었는지. 순식간에 정말 다양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는 걸까?나에게 모든것을 의탁하고있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주고 싶다. 내 품안에서만큼은 안전하고 포근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고싶다.


너의 존재자체로 얼마나 행복한지.너는 나의 기쁨과 행복과 환희야.

너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면 얼마나 기쁜지.네가 나를 향해 까르륵 웃으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만큼 엄마가 많이 노력할게
나를 필요로하는 존재에게 내가 필요한 일을 해 줄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너로인해서 알게되었어.

사랑한다. 내 아기.

너의 작은 손가락. 너의 부드러운 발바닥.너의 앙증맞은 코와 동그란 이마와 뺨.모든 곳에 사랑을 담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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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6일차. 산후 우울증이 올뻔 했지만 남편에게 성질부리고 엄마와의 기나긴 통화로 기분이 많이 개선되었다.

 

분명 산후조리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출산을 하기 전까지만해도 아기를 낳고 나면 되는대로. 상황에 맞춰서. 모유수유든 분유수유든 뭐든간에 되는대로 하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입원한지 사흘차때부터 가슴이 불어오르더니 6일차되는 퇴원일에는 가슴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살짝만 건드려도 너무너무 아팠다.

 

퇴원일에 바로 조리원에 입소하여 바로 유축을 했는데 60ml가 나왔다. 그걸 신생아실에 전해주는 과정에 원장님이 보시고는 바로 마사지실로 이동.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나의 가슴을 마사지해주셨다. 왼쪽가슴은 원장님이 오른쪽 가슴은 실장님이 맡았다. 거의 한시간동안 주물러지고 짜내어진 나의 가슴은 붉게 달아올라서 냉찜질을 해야했는데. 가슴마사지를 받는 내내 젖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임신을 알게된 5주차때부터 가슴이 부어올라서 횡단보도 초록불을 앞두고도 뛸 수가 없었기 떄문이다. 자다가도 가슴이 아파서 깨기도 여러번이었으니.... 모유량이 많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조리원에 들어와서 6번의 가슴마사지를 받았는데. 받을 때마다 원장님과 실장님이 모유가 많다고 감탄을 매번 하시니...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지금 조리원에 입소해있는 대부분의 산모가 모유량이 많고 모유수유에 욕심이 많다고.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는 분유를 먹이려는 산모는 없다. 애초에 이 조리원이 모유수유를 권장하기로 소문이 나있기도 해서일까. 원장님께 직접 물어보니 분유를 먹이려는 산모는 아주 가끔 있다고하고. 회사 복직문제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복직하기전에 출산휴가 중에라도 모유를 먹이려는 산모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다들 모유수유에 열성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새벽에 수유콜을 받는 사람은 없지만, 새벽에 모유를 유축하여 신생아실에 전달하는 산모는 나 뿐만이 아니고 다른 산모들도 많다고 한다. 수유콜은 대체로 7시부터 대부분은 받기 시작하여 수유실에 앉아있노라면 익숙한 얼굴의 산모들이 삼삼오오 모이는데. 최대 5명이 앉아서 수유를 할 수있는 공간이 꽉차서 객실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도 있다. 다들 본인의 아기에게 집중을 하여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젖을 먹인다.

 

가슴을 잘 드러낼 수있도록 가운데에 깊게 파인 절개선을 따라 단추가 달린 산모복은 분홍색인데. 오래된 산모복은 연한 분홍색이고 그나마 새 것으로 보이는 산모복은 조금 더 진한 분홍색이다. 분홍색의 펑퍼짐한 옷을 뒤집어 쓴 산모들이 모여서 붉은 빛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수유를 하고있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모유수유를 향한 열망이 없었던 산모도 여지없이 그들에게 동화되어버리고 만다. 나 또한 그랬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나서 젖병에 노출횟수가 적은 아기는 엄마의 젖을 아주 잘 빨아 먹는다. 제왕절개를 한 나는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려본게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미 젖병에 잔뜩 노출된 아기는 나의 젖꼭지를 거부하고 울고 새빨개져서 이도 나지않은 잇몸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응애 응애하고 서럽게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너무 너무 속상하다. 옆의 산모의 아기는 평온하게 엄마의 젖을 실컷 빨고 순하게 잠드는데. 나의 아기는 젖을 제대로 물지 못해서 뉘이면 울고 뉘이면 울고 또 뉘이면 울어버리니 아기가 배가 고플까봐 마음은 애가 타고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하니 결국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만다.

 

결국에는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는데. 아기를 돌보는일이 서툰 내가 어찌나 못나보이던지. 속상하고 아기에게 미안한지.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살짝씩 찬다. 정말 슬펐거든. 이 모습을 신생아실 직원분께서 보게되어서 특별관리 대상이 된 거같은데.... 뭐 덕분에 좀 더 섬세한 케어를 받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되었다. 

 

눈물을 흘리던 날 내 탓을 하기 싫어서 남의 탓을 많이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에게. 남편이 조리원에서 조심한다고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보이지도 않고. 물 한모금 마시지도 않으니 겸상을 하지도 못하고. 주말에 곁에서 체온을 느끼면서 잠도 자지 않으니 서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차가 뭐가 중요하고 코스트코에서 딸기를 사다주는 거보다 조금이라도 곁에서 있으면서 날 도닥거려주길 바랬는데. 그런데에는 영 잼병인 사람이었던지라 결국 도닥거려달라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나니 옆에서 날 토닥거려줬다. 그 전까지는 맞은 편에 앉아서 별 것도 아닌걸로 운다고 하는데 그 말이 더 속상했다. 물론 심각하게 생각할 수록 점점 심각해질 뿐이기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는게 마음이 편하기야 했겠지만. 그럴 수 있었더라면 내가 눈물 지을 일도 없었겠지.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서 조리원 객실에 앉아있노라니 너무 조용하고 쓸쓸했다. 남편에게 아기를 오래 보여주고 싶어서 이날은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모자동실을 했기에 몸도 지쳤고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도 좋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거의 한 시간 반 가량을 위로와 격려 그리고 별 시답지않은 시시콜콜한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실컷 떠들고 나니 기분이 한 결 개운해졌다. 그리고 한시간 남짓 쉬고나니 다시 돌아온 유축의 시간. 또 젖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지나치게 조용한 조리원이 적적하여 무의미하게 떠드는 유투버의 말소리가 들리게 핸드폰으로 틀어놓고. 그거로도 부족해서 유투브에서 또 음악을 찾아서 틀어두었다. 그리고 가슴을 내어놓고 유축기로 가슴에 고인 모유를 짜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한 번 더 유축. 그리고 7시에 수유콜. 그리고 8시에 수유콜 그리소 11시까지 모자동실... 그리고는 몸 관리를 위한 전신 마시지를 받고, 점심을 먹고 또다시 유축을 한다. 그리고는 모유가 나오는 가슴 관리를 위한 가슴마사지를 1시부터 2시까지 받고. 3시까지 쉬는 시간을 갖은 뒤에 여지없이 울리는 수유콜을 따라 수유실로 이동한다.

 

아기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잔뜩 성이 나서 울어버리면 젖을 먹이는데 애를 먹기 때문에. 수유콜을 받으면 허둥지둥 거리면서 양말을 꿰어신고 산모복 위에 병원의 로고가 세겨진 체크무늬 가운을 걸치고 허겁지겁 수유실로 뛰듯이 내려간다. 도착한 수유실에서는 여지없이 늘 비슷한 모습의 산모들이 가슴을 내어놓고 자기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잔뜩 화가나서 우는 아이. 젖을 먹다가 지쳐서 잠든 아기를 애써 깨우려는 엄마들의 목소리.

 

가슴에 젖이 차면 단단해지고 아프기 때문에 3시간마다 유축기로 젖을 짜내고. 그러고도 남는 젖이 많기 때문에 수유콜이 울리면 서둘러 내려가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직은 아기가 젖을 빠는데 익숙하지 않고 빠는 힘도 약하기 때문에 사실상 젖을 먹인다기보다는 젖먹이는 연습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다.

 

나의 가슴은 지나치게 젖이 많고 유축기로는 전유만 뽑아낼 수있고 후유는 뽑아낼 수가 없는데. 이 후유가 계속 고이고 고이다 보면 젖몸살 유선염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후유는 아기만이 해결해 줄 수있다. 이외에 가슴마사지로 젖을 다 비워낼 수도 있지만... 조리원을 퇴소하고 나서 매번 가슴마사지(오케타니, 통곡)을 불러다가 마사지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원하는때에 마사지사가 없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병원에서 아기가 젖꼭지도 제대로 물지 못하던 때에 한시간 두시간 지날 때마다 점점 단단해지는 가슴을 만지면서 너무나 무서웠다. 갈 수록 가슴은 단단해지고 팽팽하게 불어나서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데. 남편에게 출산전부터 가슴마사지를 부탁했었는데. 제대로 공부를 안해놓아서 전혀 도움이 안되서 또 화가 났었다. 내가 내 가슴을 마사지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조리원에 오기전 이틀동안 젖몸살이 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게되었고. 결국 도착한 날에 잔뜩 붉어진 가슴은 냉찜질행이었다.

 

나의 가슴상태 개선에 남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곁에서 제일 많이 고생을 했다. 제왕절개는 입원이 5박 6일간이었는데. 유도분만일을 포함하면 총 6박을 병원에서 보내야했다. 나는 그나마 병실침대였지만 남편은 소파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나름 환자라고 보호자역할을 한다며 병원에서 6박을 단단한 소파에서 담요한장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수술을 한 나의 바이탈을 확인하기 위해 1시간 단위로 들어오는 간호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거의 잠을 자지 못했기도 했고. 보호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했기 때문에 자다가도 마스크를 주워서 쓰기 바빴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날위해 물수발들어줘 심부름해줘 머리도 감겨줘 발도 씻겨주고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덕분에 무사히 병실 생활을 할 수있었기에 우수보호자포상금을 내렸으나 결국은 병원비로 쓰였다.

 

그런데 예전에는 남편이 이 블로그를 그나마 좀 읽은 줄 알아서 좋은 말 위주로 적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이 블로그를 제대로 읽지 않는 다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에 그냥 막 내용을 쓰기로했다. 내 블로그를 읽었으면 맘모스빵을 구해다가 사식으로 넣어줬을 건데. 맘모스 빵 구경은 아직도 못해봤다.

 

하여간. 조리원에 입소하고나서 모유수유, 유축, 가슴마사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허둥지둥 하다보니 나만의 시간과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특별관리대상이 된 덕분인지..ㅋ.. 이렇게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가슴속에 가지고있던 말들을 옮겨 적어놓으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이 또한 다 추억이 되겠지..... 

 

외롭고 쓸쓸한 것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서였겠지.

임신전부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한지 오래되었고.

임신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였고.

출산후에도 코라나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아기를 길러갈 미래에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만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하겠지.

 

너무 애쓰려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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